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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 Listen Do Think/Art

애니 레보비츠(Annie Leibovitz)와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 사진은 예술인가

by Iamhere 2009. 6. 13.

 요즘 가장 귀여운 헐리우드 커플인 잭 애프론(Zac Efron)과 바네사 허진스(Vanessa Hudgens)의 사진들-홍보용이든 파파라치 사진이든-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둘은 신이 내린 얼굴과 몸매의 소유자로 함께 있는 것을 보자면 마음이 절로 훈훈해진다. 그들이 하와이 해변을 거니는 파파라치 사진은 로맨스 영화의 스틸 사진이 되고 까페에서의 평범한 데이트 사진은 패션 광고가 되는 것이다!

 이 둘의 화보 인생에 열광하던 중, 둘이서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컨셉으로 사진을 찍었다는 최근 정보를 입수했다. 사진 작가의 이름은 애니 레보비츠, 사진 스타일은 어디서 묘하게 많이 본 듯한 느낌을 풍겼다. 약간의 검색과 함께 애니 레보비츠라는 사진 작가가 상당히 유명하고도 우리에게 친숙한 사진들을 많이 찍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존 레논과 요코 오노

그녀의 '친숙한 사진들'은 사진 전시회나 갤러리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잡지들에 주로 등장하기 때문에 친숙하다. 뉴스위크를 넘기면 나오는 숀 코너리의 루이뷔통 광고 사진, 배니티 페어의 커버를 장식하는 여배우들의 군단, 등 이름은 몰랐지만 나는 이미 그녀의 작품들을 많이 접하고 있었다. 세심하게 연출되어 완벽에 가깝게 찍힌 연예인들의 이미지는 언제나 눈이 가게 만든다.  이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사진은 아마 롤링 스톤즈 잡지 커버를 장식했던 요코 오노와 존 레논의 사진일 것이다. 벌거벗은 채 그의 연인 옆에 꼭 붙어 있는 존 레논의 사진은 누구에게라도 그들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를 강렬하게 보여주고 있다. 
 
 최근에 애니 레보비츠가 주력하고 있는 것이 바로 잭과 바네사가 찍은 디즈니 초상화 시리즈(Disney Portrait Series)이다. 이것은 디즈니의 스토리들을 모티브로 그것을 셀레브리티들과 재연해내는 프로젝트이다. 대표적인 사진으로는 신데렐라로 분한 스칼렛 요한슨, 쟈스민과 알라딘으로 변신한 제니퍼 로페즈와 그의 남편, 그리고 인어공주를 재연한 줄리안 무어 등이 있다.

 애니 레보비츠의 디즈니 시리즈는 묘하다. 사진의 내용이 묘하다는 것은 아니다. 애니 레보비츠의 디즈니 시리즈는 아름다운 연예인들의 얼굴과 극적인 구도, 세심한 연출과 후보정(re-touch)을 통해 디즈니가 지향하는 단 하나의 목표를 충실히 재현하고 있다. 

그것은 '환상'이다. 
스칼렛 요한슨의 신데렐라 사진을 보라.


신데렐라가 된 스칼렛 요한슨

 몽환적인 연무가 깔린 어스름의 저녁, 아름다운 스칼렛 요한슨이 드레스 자락을 펄럭이며 계단을 뛰쳐내려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그 뒤의 그 결말을 알고 있다. 왕자와의 재회, 사랑과 행복의 결말. 디즈니 시리즈를 보고 있자면 처음에는 그 화려한 색감과 세밀한 선에 홀려 빠져들어가는 느낌이다. 그러나 시리즈가 제시하는 '환상'의 에센스는 이내 멀어져버리고 마는 듯한 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일차적으로 사진을 지각할 때는 그것을 전체로서 받아들이면서 환상에 빠져들지만 시간이 흘러 디테일과 형식이라는 부분에 눈을 돌리면 이것은 완벽하게 연출되고 보정되고 어찌보면 조작된 이미지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환상적이고 아름답고 갈망하는 이미지이지만 그것이 누군가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발견에서 오는 씁쓸함은 묘한 감정을 남긴다. 애니 레보비츠의 의도였을까? '환상' 그 자체는 아름답지만 알고보면 '현실'이 아니라는 이중적인 감정의 선사는 이 사진들 앞에 머무르는 나의 시간을 더 길게 만든다.

  세밀한 연출, 요구와 보정, 화려한 색감을 활용하는 애니 레보비츠를 생각하고 있자면 그녀와 정반대의 극단에 서 있는 사진 작가가 생각난다. 바로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이다.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의 사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의 유명작

진은 흑백이다. 그는 하나의 사진을 찍기 위해 한 곳에서 몇 시간을 기다린다. 그의 사진 스타일은 애니 레보비츠와 비교했을 때 한 없이 자연스럽다. 아무것도 덧대지 않고 그의 선택에 의해서 포착되는 순간은 애니 레보비츠의 사진과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다. 비교적 의도성이 없는 그의 사진에는 해석의 여지가 무한히 숨어 있다. 남자는 어디로 그리 바삐 달리는 것일까? 왜 물이 있을까?남자와 물에 비친 남자의 그림자의 대칭성이 참 좋네.
 
 이렇게 양 극단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두 작가를 보고 있자면 스크루턴(Scruton)의 유명한 "사진은 예술인가" 에 대한 논의가 떠오른다. 

 스크루턴의 대답은 "노"였다.  예술의 전제 조건으로 스크루턴은 '재현(representation)'을 내세운다. 즉, 예술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어서는 안된다. 작가 나름의 독특한 시각과 철학이 묻어나도록 대상을 다시(재) 보여주어야(현) 한다. 그러나 스크루턴이 보기에 사진은 재현의 여지가 없는 형식이었다. 사진은 그저 있는 그대로의 피사체를 제시해줄 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반박한다. 사진 역시 세심한 조작,조명이나 연출을 통해 재현의 여지를 실현시킬 수 있다고. 그러나 스크루턴은 이에 대해 사진이 예술이 되려면 작가가 사진의 모든 디테일과 표현을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통제해야 하는데 사진에서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한 발 물러서서 설사 그것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렇게 재현된 사진은 이미 사진이 아니라 회화인 것이다.  포토샵으로 보정되고 air-brush된 이미지를 상상하면 된다. 그것은 이미 사진이 아니라 붓질이 된 회화의 영역으로 넘어간 것이다.

 담담히 순간을 포착하는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과 세밀한 연출과 보정으로 순간에 색깔을 입히는 애니 레보비츠. 둘은 스크루턴이 말하는 사진과 회화의 스팩트럼의 양 극단에 서있다고 볼 수 있다. 스크루턴은 사진이라는 형식의 통제 불가능성을 이유로 예술로서의 존재를 부정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특징 때문에 예술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통제할 수 있으면서도 통제할 수 없는 양면성과 모호성이 오히려 사진의 역동적인 가능성을 제고 시켜주는 것은 아닐까. 사진과 회화의 중간 혹은 양 극단을 넘나들면서 세상의 다양한 모습을 다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사진을 진정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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